페놀라에서 시즌이 끝나고, 이번엔 브리즈번의 농장으로 가게 되었다.
페놀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우선순위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렇다고 가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한달이 넘게 어느 시골마을 카라반 파크에서 지내야 했다.
브리즈번 시내를 벗어난 외곽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확히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주변엔 갈 곳도 없고, 그 때 느낀 그 답답함은 겪어 본 사람만 알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기능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잘 되는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 티비도 없고, 놀러갈 곳도 없이 카라반에서 지내는 것은 정말 지루했다.
차가 있었다면 브리즈번 시내라도 다녀오고 했을텐데, 차도 없으니 그 시골에서 어디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양파공장 시즌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는 다 시골마을이다 보니 주유소 하나, 조그마한 구멍가게 하나 있었던 거 같다.
페놀라에서 알게 된 동생 한명과 같이 지내면서 언제 시작할 지 모를 일을 기다리며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웨이팅 중간에 당근공장 일일 알바도 들어왔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기에 거절하고 무력감에 하루 하루를 보냈다.
룸메는 밝고 긍정적인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그거라도 하겠다며 일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러다 양파 시즌 시작한다는 소식이 왔고, 우리도 숙소로 옮긴다고 했다.
그제서야 뭔가 막혔던 게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브리즈번의 부나(Boonah)로 가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북적거리는 한인 숙소 대신, 공장 직원의 조용한 가정집에서 쉐어를 하게 되었다.
작은 방하나에 침대 두개와 책상 하나가 있었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에 왔구나.’ 그 순간, 마음이 놓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뭔가 앞이 환해지는 기분이고, 기분도 상쾌했다. 앞으로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뭔가 일도 계속 많아지고
첫주에 2-3일 나가며 400불,
그 다음 주 계속 나가며 600불,
그 다음 주 800불
그 다음 주 1000불,, 1200불...
점점 통장에 잔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새벽에 나가서 하루종일 서서 작업하고, 양파를 문질러 닦고,
썩은거 버리면서 흙먼지를 매일 뒤집어 쓰고, 밤마다 손가락 마디 마디가 쑤셔서 아프기도 했지만,
고단해서 금방 잠이 들었고, 아침에는 개운하게 일어났다.
이게 바로 몸은 쓰지만 정신적 스트레스 없는 삶이라고나 할까?
평생 살면서 호주에서 살았던 그 때가 가장 스트레스 없고 정신이 맑았던 것 같다. 딱히 감기같은 흔한 병도 없었다.
아직도 거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는 시골의 카라반 파크에서 웨이팅할때에 비하면,
이곳은 확실히 마을 느낌이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읍내같은 곳이 나온다.
그곳에 대형마트도 하나 있고, 커피샵, 옷가게, 레스토랑, 술집 다 있다.
그러니 시골이지만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았다.
주말에는 룸메랑 읍내나가 커피도 마시고, 아이쇼핑도 하고 나름 괜찮은 나날을 보낸 것 같다.
무엇보다 통장에 돈이 차있어서 든든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랄까?

워홀을 하며
힘든 시간도, 외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 나는 버텼고, 그만큼 벌었다.
주급 1400불도 찍어보고
계좌에 돈이 쌓이는 걸 보며 처음으로
"아, 나도 뭔가 해냈구나" 싶은 순간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돈으로 이번엔 영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호주에서 학원을 다니며 일도 병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물가도 비싸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필리핀 어학연수.
3개월 동안, 내 인생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막상 필리핀에 도착하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날씨는 덥고, 음식은 낯설고, 영어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사람들이 참 따뜻했다.
같은 목표를 가진 워홀러, 학생, 직장인들과 어울리면서 매일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수다 떨고,
주말마다 시내 맛집을 찾아다니고, 구경거리도 놓치지 않았다.

쇼핑도 하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소소한 일상들이 참 즐거웠다.
사실 영어 공부는 처음 한 달만 죽어라 했다.
그 후엔... 노느라 바빴다. 그런데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왜냐면,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기억들이 내 영어보다 훨씬 더 나를 성장시켰으니까.
함께 웃고, 울고, 대화하고, 한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지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워킹홀리데이와 어학연수.
이 두 가지는 내 20대의 진짜 전환점이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이 떠났지만 그 끝엔 내가 있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 더 나다운 내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쯤은 떠나보길 바랍니다.
목적이 없어도 괜찮아요.
때론 ‘방향’보다 중요한 건
그 길 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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